—-- 돈에 대한 당신의 감정이 곧 당신의 잔고다—-
“돈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단순히 철학적 물음이 아니다, 그 어떤 금융지식보다도 그 어떤 절약습관 보다도 이 질문은 당신의 “부의 미래”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사람은 마음속에서 부자가 되어야 실제로 부자가 된다.”
–나폴레온 힐(think and grow rich)-
이 말의 핵심은 “부(wealth)”는 “결과”가 아니라, “진동의 상태”라는 것이다. 당신이 돈을 떠올릴 때 느끼는 감정 - 죄책감, 두려움, 결핍감, 질투 혹은 감사, 여유, 확신, 기쁨…. 이 감정이야 말로 당신이 가진 실제 자산보다도 당신의 “진짜 자산” 을 말해준다.
“인간은 자신이 자주 느끼는 감정의 파장대로 삶을 끌어당긴다.”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 당신의 기분을 먼저 바꿔야 합니다. 왜 일까요?
세상은 당신이 무엇을 바라느냐보다 어떤 진동으로 존재하느냐에 더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돈은 감정의 파장을 가장 정직하게 반영합니다. 부족, 두려움, 불안의 에너지에선 돈이 더 빠져나가고, 감사, 여유, 확신의 에너지에서는 돈이 자연스럽게 들어옵니다. 이는 신비나, 미신이 아닙니다. 심리학, 생리학, 양자물리학까지 포함한 감정과 현실 창조의 과학적 메커니즘 입니다.
“감정은 생각보다 강력한 파장이다.
우리는 항상 어떤 형태로든 “전송”하고 있다”
- –maximum achievement—--
심지어 아무 말도 하지않아도 당신의 진동은 주변과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돈이 부족해”라는 감정은 무의식 적으로 “ 불안” “걱정” “무가치함”의 신호를 뿜어내고 “나는 돈과 조화롭게 살고있어” 라는 감정은 “여유”, “자신감”, “수용”의 파장을 전송합니다. 돈은 이 에너지에 반응합니다. 말 그대로 당신의 현실은 감정의 에너지 송수신 결과 입니다.
감정은 단순한 심리가 아니다. 감정은 파동이며 그 진동수에 따라 “당신이 끌어당기는 돈의 “방식”과 “양”이 결정된다.
“당신은 당신이 바라는 돈이 아니라, 돈에 대해 당신이
“느끼는 감정과 일치하는 수준의 돈만 받는다”
–머니 룰에서–
예를 들어 보자, 두 사람이 같은 금액을 벌고 있어도 한 사람은 늘 “불안” 속에 살고 한 사람은 “감사” 속에 살며 1년후 둘의 경제적 현실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왜 일까?
불안은 소비로 흐르고 감사는 확장으로 흐르기 때문이다.불안은 움츠리고 감사는 연결하고 불안은 지출하고 감사는 저장하고 순환한다.
일본의 경영철학자이자 “비상식적 성공법칙”의 저자인 간다 마사노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은 ‘좋아하는 사람’ 에게 간다. 돈을 미워하는 사람은, 돈에게외면 당한다”
이것은 단순히 시적인 표현이 아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여기고 거리를 두듯 돈 역시 감정의 진동을 읽고 당신을 대한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돈이 미운건 아닌데요?” 그러나 이렇게 물어보자. “돈이 들어오면 당당하게 받는가. 아니면 미안해 하는가?” “ 돈이 없을 때 ‘돈이 부족하다’고 중얼거리지 않는가?” “고액 결제를 앞두고 죄책감이 드는가, 아니면 가치에 대한 확신이 드는가?” 이 질문에 대해 당신의 감정이 어떤 진동인가 점검해 보라. 그것이 곧 당신의 부를 이룰 수 있는 “에너지 잔고”다. “돈이 들어오는 기쁨을 미리 느끼면 그 기쁨이 돈을 데려온다” 그는 돈이 들어올 때의 감정을 매일 감사로 연습했습니다. 통장에 찍히지 않아도, 지갑에 돈이 없어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감정을 “먼저 느꼈습니다.” 그 결과 놀라웠습니다, 몇달후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경로로 부와 연결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말 그대로 감정이 현실을 이끈 것입니다.
성공학의 거장 “브라이언 트레이시(brian tracy)”는 캐나다 샬럿 타운 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접시닦기, 공사장 인부, 청소부, 경비원, 화물선 선원등 일용직을 전전했다.
30대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고 성공 신화를 이루었다. 그의 저서에는 80여 권이 넘는 책을 썻고 그중 행운의 법칙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는 경제 시스템이 아니라. 자기 내면 시스템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명확한 사실이다. 모든 경제 시스템은 불완전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누군가는 돈을 번다. 누군가는 위기에서 기회를 만들고 누군가는 기회속에서 가난을 만든다.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자신이 돈에대해 갖는 감정, 그리고 행동의 방향성이다.그리고 그 감정은 결국 에너지 상태로 축적된다. 돈의 에너지 상태는 습관처럼 유지되어야 한다. 에너지란, 일시적이어선 안된다. 감정의 진동은 “반복성과 지속성”이 있을 때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된다. “돈은 예측 가능한 패턴을 좋아한다.
에너지의 일관성이 돈의 흐름을 만든다.” 가끔 감사하는 사람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감사도 “가끔”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반복되는 돈에 대한 감정 훈련이 결국 “감정의 체질”을 바꾸고 그 체질이 “재정의 체질”을 바꾼다. 우리는 돈이라는 현실적 대상이 사실은 감정이라는 비물질적에너지에 반응한다는 중요한 원리를 살펴보았다. 부자들은 행동도 다르지만 그 보다 먼저 감정의 파동이 다릅니다. 돈을 쓰는 감정, 돈을 받는 감정, 돈이 떠날때의 감정, 이 모든 감정이 현실의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당신의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 “지금 어떤 감정으로 살고 있는가”를 바꿔보세요. 부는 그 파동에 반응해 다가옵니다. 돈은 종이도 아니고 숫자도 아니다. 돈은 에너지이고 그 에너지는 “감정”의 형태로 당신안에 저장됩니다.
“당신이 돈을 대하는 방식은 결국 당신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다” 라고 나폴레온 힐은 자신의 책에 남겼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파동으로 돈을 부르고 있습니까?” 그 대답이 곧 당신의 현실입니다.
–의도, 생각, 감정이 빚어내는 풍요의 에너지–
우리는 흔히 “부”를 통장의 잔고와 숫자나 소유한 부동산의 크기처럼 눈에 보이는 가치로만 측정하곤 합니다. 그러나 부의 본질을 깊게 파고들면 그 중심에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현대 물리학이 증명하듯 우주의 모든 물질이 에너지의 진동 결과물 이라며, 부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풍요를 현실로 불러오기 위해서는 내면의 의도와 생각, 그리고 감정이라는 세 가지 에너지를 정렬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부를 얻기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doing)”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부의 창출은 “어떤 상태로 존재할 것인가(being)” 즉 우리 내면의 “에너지 경영”에서 시작됩니다. 의도, 생각, 감정은 부라는 물리적 현실을 빚어내는 핵심 원료입니다.
첫째, 의도(intention)는 에너지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합니다. 의도는 에너지를 특정한 목적으로 이끄는 화살표와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돈을 벌고싶다”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의도가 “결핍에 대한 공포”인지 “창조를 위한 열망”인지에 따라 에너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릅니다.
가난해질까 봐 두려워하는 의도는 “결핍”이라는 주파수에 고정되어 역설적으로 더 큰 부족함을 불러옵니다. 반면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나누고 그 대가로 풍요를 누리겠다는 “확장”의 의도는 에너지를 선순환시킵니다. 부를 창조하는 첫 단추는 나침반의 바늘을 결핍이 아닌 풍요의 방향으로 명확히 고정하는 것입니다.
둘째, 생각(thought)은 부를 담을 그릇의 설계를 담당합니다. 생각은 에너지가 물질화될 때 통과하게 되는 “틀(mould)”입니다.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우리의 생각은 무한한 가능성의 상태에 있는 에너지를 특정한 현실로 고착시키는 관찰자의 역활을 합니다. “나는 이 정도만 벌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제한적 신념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에너지의 통로를 좁게 만듭니다.
반면 부를 우주적 순환의 한 형태로 이해하고 스스로를 그 풍요가 흐르는 거대한 통로로 정의하는 생각은 더 큰 에너지를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그릇을 만듭니다. 부유한 생각을 가진 이들의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기회와 자원을 포착하는 예민한 안테나로 가능하게 됩니다.
셋째, 감정(emotion)은 현실을 실현하는 강력한 추진력이다. 의도는 방향이고 생각이 설계도라면, 감정은 그 설계도를 현실로 밀어 붙이는 연료이자 에너지를 끌어당기는 자석입니다. 감정은 영어로 “energy in motion” 즉 “움직이는 에너지”를 뜻합니다.
부가 가장 강력하게 공명하는 감정은 바로 “감사”와 “셀렘”입니다. 아직 물질적인 부가 도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풍요로운 상태인 것처럼 느끼는 기쁨은 우주에 강력한 신호를 보냅니다.
이러한 진동의 에너지는 그와 일치하는 물리적 사건들을 삶으로 자석처럼 끌어당깁니다. 걱정은 두려움이라는 낮은 주파수로 저항을 걷어내고 기쁨의 에너지를 유지할 때, 부는 중력처럼 우리를 향해 쏟아집니다.
당신의 주파수가 곧 당신의 부가 된다.
결국 부라는 물리적 현실은 우리가 내면에서 정렬시킨 에너지 상태에 대한 성적표 입니다.
다음과 같은 부의 공식을 기억하십시오.
재산(wealth)=명확한 의도(clear intention)+일관된 사고(consistent though)+높은 주파수와 감정(high frequency emotic)
명확한 의도로 방향을 잡고 일관된 생각으로 통로를 닦으며 높은 진동의 감정으로 에너지를 증폭시킬 때 비로소 “부의 연금술”은 완성됩니다. 외부의 숫자를 바꾸려 애쓰기 보다, 당신의 내면 주파수를 먼저 푸용로 맞추십시오. 당신이 스스로 풍요 그 자체가 될 때 세상의 모든 부는 자연스럽게 당신이라는 에너지 장으로 흘러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모든것이 에너지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것만이 실제한다고 믿으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견고한 책상,차가운 콘크리트 벽, 그리고 손에 잡히는 지폐처럼 물질적인 것들이 우리 현실을 구성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현대 과학과 깊은 철학적 성찰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진실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모든것은 사실 아주 미세하게 진동하는 “에너지”의 결과물이라는 사실 입니다.
알베르트 아인 슈타인의 “모든것이 에너지다(everything is energy)”라는 말은 그의 혁명적 발견 특히 질량-에너지 등가성 E=mc제곱의 핵심을 꿰뚫는 한마디 입니다. 이는 단순히 시적 표현이 아니라, 우주의 근본적인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심오한 과학적 진리입니다. 이 명제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 세상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쉽고 자세하게 풀어 보겠습니다.
과거 아이작 뉴턴의 물리학에서는 물질 (질량)과 에너지를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보았습니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은 질량을 가진 물체에 작용하는 힘 때문이며 뜨거운 난로에서 나오는 열은 에너지의 한 형태일 뿐, 둘은 서로 변환될 수 없는 독립적인 존재였습니다. 이것이 당시 상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인 슈타인은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는 특별한 상황을 상상하며 이 고정관념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는 1905년 발표된 “특수 상대성 이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관찰자의 속도에 상대적으로 변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습니다.그리고 이 이론의 마지막 결론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공식인 E=mc제곱 를 세상에 내 놓았다. 이 단순한 공식으로 물질과 에너지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질량을 가진 물질은 곧 엄청난 양의 에너지로 치환될 수 있으며, 그 역도 성립합니다. 우리가 단단하다고 믿는 물체를 원자 단위이하로 쪼개어 들어가면, 그곳에는 고정된 실체가 아닌 끊임없이 움직이는 진동하는 파동만이 존재합니다. 결국 “현실은 고정된 고체가 아닌 역동적으로 흐르는 에너지의 장(field)”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느냐는 그 에너지가 어떤 주파수로 진동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셈입니다.
E=mc제곱 질량과 에너지의 연결고리인 공식의 의미를 하나씩 살펴 보겠습니다.
E는 “에너지(Energy)”를 의미합니다.
m은 “질량(mass)”을 의미합니다.
c는 “빛의 속도 (c=약 30만km/s)”를 의미하며 이는 매우 큰 상수입니다.
이 공식은 “에너지(E)는 질량(M)에 빛의속도에 제곱(C)을 곱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즉 질량과 에너지는 본질적으로 같으며 서로 변환될 수있는 동일한 존재의 다른 모습일 뿐 이라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이는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당신의 책상, 컴퓨터,심지어 당신의 몸을 이루는 아주 작은 양의 물질 (질량)안에도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공식에서 질량이 곱해지는 빛의 속도의 제곱 이라는 값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그램(g)의 물질이 100% 에너지로 전환된다면, 이는 TNT 폭탄 약 21.000톤이 폭발하는 것과 맞먹는 엄청난 에너지 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물질이 에너지로 변하는 것을 쉽게 목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화학반응 (예, 나무가 타는 것)에서의 극히 미미한 양의 질량만이 에너지로 변하기 때문이다.
—관찰이 에너지를 현실로 고정 시킨다—
양자역학의 “관찰자 효과”는 에너지가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미립자들은 관찰되기 전까지는 여러 가능성이 중첩된 “파동”의 상태로 존재하다가 누군가 관찰하는 순간 비로소 특정한 위치에 “입자”로 고정됩니다. 이것을 우리의 삶에 대입해보면 놀라운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리의 “주의 (Attention)” 라는 에너지가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중에서 특정한 현실이 선택되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핍에 집중하면 결핍의 현실이, 풍요와 감사에 집중하면 그 에너지가 응축된 현실이 우리 앞에 물질화 됩니다.
—감정이 현실을 끌어당기는 자석이다—
단순히 생각만 하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에너지를 현실로 바꾸는 가장 강력한 엔진은 바로 “감정(emotion)입니다. 감정은 영어로 (energy in motion)”의 약자라고 불립니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 셀렘, 평온함은 높은 주파수의 에너지를 방출하며그와 공명하는 사건들을 삶으로 끌어들입니다. 반면 두려움,분노, 무력감은 무거운 주파수를 형성하여 우리의 정체된 현실에 머물게합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은 단순히 인간관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에너지ㅣ 주파수를 가진 것들이 서로 끌어당긴다는 “공명의 법칙”을 설명하는 우주의 원리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원하는 현실을 만들기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외부 환경을 바꾸려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의 에너지를 먼저 바꾸는 것입니다. 매일 의식적인 선택으로 내가 어떤 에너지 상태로 하루를 시작할지 결정하십시오. 우리가 뱉은 말은 소리라는 형태의 에너지입니다. 긍정적인 확언은 내 주변의 에너지장을 재배열 합니다. 원하는 미래를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물리적 현실로 가져오는 가장 빠른 통로 입니다.
—당신의 주파수가 곧 당신의 세계다—
“에너지가 현실을 만든다”는 말은 우리에게 막중한 책임감과 동시에 무한한 자유를 부여합니다. 우리는 환경의 희생자가 아니라 자신의 에너지를 조율함으로서 현실이라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순간 당신이 어떤 에너지를 내 뿜고 있습니까? 당신이 방출하는 그 에너지가 곧 당신이 내일 마주하게 될 현실의 재료가 됩니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에너지를 다스릴 때, 비로소 보이는 세상은 당신의 뜻대로 흐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에너지다” 라는 명제는 단순히 “물질 속에 에너지가 숨어있다”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이는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실체가 바로 에너지이며 우리가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에너지가 특정한 형태로 매우 빽빽하게 응축되어 안정화 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인 슈타인의 발견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딱딱한 물질세계너머에 있는 끊임없이 진동하고 상호작용하는 에너지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열어 주었습니다.
결국 당신의 눈앞에있는 모든것, 그리고 당신 자신조차도 거대한 에너지의 한 표현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인 슈타인이 우리에게 알려준 놀랍고도 심오한 우주의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