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말이 어떻게 부의 실체가 되는가–
- 존재의집, 그리고 언어의 경제학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테두리에서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이를 경제적 관점으로 치환하면 더욱 서늘한 진실이 드러납니다. 당신이 매일 거주하는 ‘언어의 집’ 이 결핍과 불평으로 지어 졌다면,그 집의 금고인 통장 잔고가 비어 있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언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에너지를 실어나르는 파동이며,무형의 생각을 유형의 물질로 응고 시키는 **’현실 설계도’**입니다. 우리가 “돈이 없다”고 말할 때,그것은 단순한 상태 보고가 아니라 ‘나의 세계에는 풍요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는 존재론적 선언이 됩니다. “부”는 숫자 이전에 ‘상태’ 이며, 그 상태를 결정짓는 첫 번째 단추가 바로 입술 밖으로 나오는 단어들 입니다.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작가인 ‘간다 마사노리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말은 사고를 강화하고,사고는 에너지를 고정 시킨다’**고요.이 말은 우리가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생각의 틀을 만들고, 그 생각이 우리 인생의 소중한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지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듯,우리가 ‘결핍’을 말하면 우리의 에너지는 온통 “부족함”에만 고정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흔히 “말이 씨가된다”는 말을 농담처럼 던지곤 합니다. 하지만 이 말에는 현대 심리학과 뇌과학이 입증한 서늘한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뇌,특히 행동의 90% 이상을 지배하는 잠재의식은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내 뱉는 “돈이 없어”,”죽겠다”,”안 된다”라는 말은 잠재의식이라는 컴퓨터에 입력되는 ‘코드’와 같습니다. 이 코드가 반복적으로 입력되면 잠재의식은 이를 운영체제(OS)의 기본 설정으로 받아들입니다. 결국 우리의 뇌는 우리가 입력한 언어적 명령에 따라 ‘돈이 없는 상황’을 기본 값으로 설정하고,그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수집하며 기회를 차단하게 됩니다. 즉, 당신의 언어는 당신의 통장 잔고를 설계하는 설계도인 셈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입 버릇처럼 “돈 없다”는 말을 달고 살 때가 많죠. 겸손의 표현이기도 하고,때로는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부터 이 말을 딱 끊어 보세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세 가지 변화가 찾아옵니다.
첫째, ‘피해자’에서 ‘주인’으로 입장이 바뀝니다.
“돈이 없어서 못해”라고 할 때는 돈에 끌려다니는 느낌이지만, 그 말을 멈추는 순간 “지금은 내 우선순위가 아니야” 혹은 “어떻게 하면 저걸 가질수 있을까?”라는 주도적인 생각이 고개를 듭니다.
둘째, 뇌의 안테나가 ‘기회’를 찾기 시작합니다.
“없다”고 단정하면 뇌는 작동을 멈춤니다. 하지만 그 단점을 멈추면, 우리 뇌는 부족한 잔고를 채울 창의적인 방법들을 비로소 검색하기 시작합니다.
셋째,나를 대하는 태도가 부드러워 집니다.
나를 ‘가난한 사람’으로규정짓던 언어의 사슬을 끊어내면,스스로에 대한 존중감이 살아나고 이는 곧 일을 대하는 태도와 성과로 연결됩니다.
우리의 뇌는 거대한 슈퍼컴퓨터와 같고, 언어는 그 컴퓨터를 구동하는 ‘소스 코드’입니다. 특히 의식의 수면 아래에 있는 잠재의식은 비판적 사고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입력된 명령어를 문자 그대로 수행할 뿐입니다.
“말은 씨가 된다”는 격언은 뇌과학적으로 ‘망상활성계(RAS)’의 원리로 설명됩니다. 우리가 특정한 말을 반복하면,우리 뇌의 필터인 RAS는 그 말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수집합니다.
**’돈 벌기 힘들다’**고 말하면, 뇌는 고통스러운 노동의 기회만을 포착합니다.
**’나는 운이 없다’**고 말하면, 눈 앞의 기회를 ‘위험’으로 인식해 회피하게 만듭니다.
결국,빈곤한 언어는 잠재의식에 ‘가난의 알고리즘’을 설치하는 행위입니다. 통장 잔고를 늘리고 싶다면,먼저 잠재의식이라는 하드웨어에 흐르는 악성 코드를 제거하고 “부의 운영체제”를 깔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잠재의식’**이라는 아주 비옥한 땅이 있습니다. 이 땅은 참 순진해서 우리가 농담으로 던진 말도 다 진담으로 알아듣고 싹을 틔웁니다.
“내 형편에 무슨 부자야”라고 말하면 잠재의식은 ‘아,이 주인님은 부자가 되는 걸 원치 않으시구나’라고 생각하고 부자가 될 기회를 알아서 걸러버립니다. 반대로 “나는 매일 더 풍요로워질 자격이 있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어”라고 다독여 주면, 잠재의식은 그 말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냅니다. 이것은 근거 없는 낙관론이 아닙니다. 내 에너지를 어디에 고정하느냐에 따라 내가 보는 세상이 달라지는 지극히 논리적인 과정입니다.
빈곤의 굴레에 갇힌 이들의 언어에는 공통적인 패턴이 존재합니다. 이를 **’결핍의 삼중주’**라 부를 수 있습니다.
첫째, **’수동적 한정’**입니다. “내 형편에 무슨…”,” 나 같은 게…”라는 표현은 자신의 잠재력을 스스로 거세하는 언어입니다. 철학적으로 이는 ‘실존의 포기’입니다. 스스로를 주체가 아닌 환경의 산물로 정의하는 순간,부의 확장성은 멈춤니다.
둘째,**’시기와 질투의 언어’**입니다. 타인의 부를 보면 “돈 많으면 뭐해, 불행할 거야” 혹은 “부자들은 다 나쁜짓을 했을거야”라고 말하는 것은,잠재의식에 ‘돈은 나쁜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우리의 잠재의식은 우리를 ‘나쁜 사람’ 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부의 유입을 막아버립니다.
셋째,**’미래의 담보’**입니다. “나중에 돈 벌면 하겠다”는 말은 ‘지금의 나는 풍요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결핍을 현재에 고착시킵니다. 풍요는 ‘나중에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의 진동에서 시작됩니다.
실제로 많은 자산가가 인생의 전환점으로 꼽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돈 없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단절이 가져오는 변화는 놀랍습니다. 가장 먼저 일어나는 변화는 “결핍의 관성”이 멈추는 것입니다. 습관적인 투덜거림이 사라진 자리에는 고요한 관찰자가 생겨납니다.
“돈이 없다”는 단정을 멈추면,뇌는 비로소 “그럼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라는 생산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단정(Statement)이 질문(Question)으로 바뀌는 순간 ,정체되어 있던 에너지는 흐르기 시작 합니다.
또한 ‘소유’가 아닌 ‘흐름’에 집중하게 됩니다. “돈 없다”는 말은 돈을 소유물로만 보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멈추면,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서비스와 가치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갑 속에 단돈 천 원이 있어도 “천 원밖에 없네”가 아니라 “내게는 천 원의 구매력이 있구나”라고 인식의 지평을 넓힐 때, 통장의 숫자는 그 인식의 크기에 맞춰 서서히 불어나기 시작합니다.
삶이 팍팍할수록 우리는 더 날카로운 말들을 내 뱉게 됩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당신의 통장 잔고를 가장 먼저 바꾸는 방법은 숫자를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입에서 나가는 단어의 온도를 높이는 것입니다.결국 부라는 것은 한 인간이 세상에 제공하는 가치의 총합이며, 그 가치를 담는 그릇이 바로 언어입니다. 당신의 입에서 나가는 말들이 결핍과 한계, 시기와 질투라면 당신의 그릇은 구멍 난 항아리 같습니다.
오는 당신이 선택한 단어 하나가 당신의 뇌세포를 자극하고, 그 자극을 행동을 바꾸며, 그 행동은 결국 통장의 숫자로 환산 됩니다. 당신의 언어는 당신의 미래를 비추는 예언서입니다. 통장 잔고를 바꾸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당장 당신의 사전에서 “결핍의 언어”를 지우고 “풍요의 문장”을 써내려 가십시오.
당신의 언어가 풍요로워질때, 비로소 세상의 모든 부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