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마주하는 법—
우리는 누구나 삶의 어느 길목에서 거대한 벽을 마주합니다. 그 벽은 때로 실패라는 이름으로, 때로 상실이나 고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를 가장 깊이 잠식하는 것은 상황 그 자체보다, 그 상황을 불러 일으키는 ** ‘두려움’**이라는 감정일 것입니다. 두려움은 마치 어둠속에서 자라나는 그림자와 같아서, 우리가 등을 돌릴수록 더 크고 괴기스럽게 몸집을 불려 나갑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불안과 두려움을 “자유의 현기증”이라 불렀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그것을 감당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너지는 순간에 서 있는 개인에게 이런 철학적 정의는 사치처럼 느껴질지 모릅니다. 발 밑의 지반이 흔들리고 공들여 쌓아온 .성벽이 허물어질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움츠려 들며자신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빈곤함에 몸을 떱니다.
이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명제가 있습니다. “무너지는 순간에도 부를 떠올려라.” 여기서 말하는 “부”란 단순히 통장의 잔고나 눈에 보이는 소유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훼손될 수 없는 ** ‘존재의 풍요’**이며, 우리가 태여날 때부터 품고온 ** ‘내면의 자원’**을 뜻합니다.
두려움이 우리를 공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결핍의 환상”입니다. “너는 이제 끝났다”, “너에게 남은 것이 없다”는 속삭임이지요. 하지만 정면으로 그 두려움을 응시해 보십시오. 사실 우리가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 했던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를 둘러싸고 있던 ‘껍데기’일 때가 많습니다.
무너짐은 가짜를 털어내고 진짜를 남기는 과정입니다. 모든 것이 허물어진 폐허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질문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는 여전히 흐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숨을 쉬고 있다는 그 경이로운 사실 자체, 고통마저도 나만의 고유한 서사가 된다는 믿음, 다시 일어서겠다는 마음을 낼 수 있는 영혼의 힘, 이것이 바로 무너지는 순간 우리가 떠올려야 할 진짜 ‘부’입니다. 두려움은 우리가 가난하다고 믿게 만들지만, 우리의 본질은 단 한 순간도 결핍된 적이 없습니다.
두려움을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만용을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떨리는 눈을 피하지 않고, 나를 찾아온 그 어두운 감정을 ** ‘부드럽게 손님으로 맞이하는 일’**입니다.
“그래, 너는 나를 무너뜨리러 왔구나. 하지만 보렴. 내 안에는 네가 결코 앗아갈 수 없는 풍요로운 영토가 있단다.” 이렇게 속삭일 수 있을 때, 두려움은 더 이상 포식자가 아닌 우리를 성장시키는 엄격한 스승이 됩니다. 무너지는 순간에 “부”를 떠올리는 행위는, 외부의 폭풍 속에서도 내면의 촛불을 지키는 숭고한 의식입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작은 죽음’과 ‘무너짐’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때마다 두려움은 당신을 빈털터리로 만들려 들겠지요.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 자체로 거대한 우주를 품은 부유한 존재입니다.
당신의 영혼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 사랑했던 기억들, 그리고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아침…이 모든 것이 당신의 금고 안에 저장된 보물들입니다. 두려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당신의 풍요를 선언하십시오. 그 순간, 당신을 무너뜨리려 했던 그 힘은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단단한 지반이 될 것입니다.
“폭풍은 나무의 뿌리를 흔들지만, 깊은 대지는 그 나무를 더 단단하게
껴 않습니다. 당신의 풍요는 그 깊은 대지와 같습니다”